P&H DI-1 스테이션 모니터

1961년에 나온 스테이션 모니터 입니다. SSB가 서서히 인기를 얻으며 리니어리티를 모니터하기 위한 장비로 소개되었습니다. 2-tone 발생기도 내장되어 있습니다. 2018년 10월에 수리하여 당시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옛날에 올린글] 그런데, 2018년 10월 말에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한참 DI-1을 가지고 놀고서 샤크룸에서 올라왔는데, 이걸 끄는걸 잊은겁니다. 다음날 문을 여니 연기가 자욱합니다. 트랜스가 타면서 지글지글 거리고 있고 샤시에는 갈색, 까만색 타르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이걸 수리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교체할 트랜스를 구하기 힘들테니까요.
  • CRT에 900V 정도가 들어가야 하고,
  • B+로 360V 정도가 있어야 하고,
  • 6.3V 히터로 3A 정도 필요하고,
  • CRT 히터로 2.5V 2.1A가 필요합니다.


  • 게다가 트랜스가 들어가는 공간은 매우 좁습니다. 샤프트가 네개 길게 뻗어 있는 사시에 들어가야 하고, 뒤로는 투톤 제네레이터가 있어서 여유 공간이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고치나... 그리하여 쳐박아 두길 2년. 그 동안 900V HV는 DC-DC 컨버터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이베이에서 약 8불을 주고 작은걸 하나 구해두었습니다. 교체되어 뜯어내도 되는 HV 필터 콘덴서를 없애면 낮지만 약간의 공간이 생깁니다. 여기까지 진행하고 잠자고 있다가, 12월 27일 갑자기 저걸 고쳐보자! 결심을 하고 달려 들었습니다.

    이 원대한 계획은,
  • 120-240V 아이솔레이션 트랜스를 이용해서 120V 1차, 240V 2차로 B+를 얻습니다. 약 330VDC는 나옵니다.
  • 6.3V 히터는 작은 트랜스를 추가합니다. 요리 저리 돌려서 붙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900V HV는 히터 전압을 반파장 정류하여 입력으로 컨버터에 넣습니다.
  • 2.5V 2.1A CRT 히터는? 아이솔레이션 트랜스에 추가 권선을 하여 얻습니다.


  • 추가 권선이 가능한 이유는, 2.5V는 권선수가 많지 않아서 남은 공간에 감을 수 있을 테고, B+의 전류도 크지 않아서 어차피 트랜스의 로드는 매우 낮아 여유 용량이 있다...라고 나름 생각하여 용감하게 진행을 했습니다. 다음 사진이 후보 제품입니다. 240V에서 190mA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46VA), B+는 다 합쳐 최대로 계산하면 70mA입니다. 실제로는 이 절반도 안될겁니다. 2.5V x 2.1A = 5.2VA 정도 더하는건 문제가 아닙니다.



    반대편 플라스틱 커버를 뜯으면 혹시 그냥 틈새로 감을 수 있을까 했는데, 에나멜선 절연이 긁혀 벗겨지길레 코어를 다 빼고 감기로 했습니다. 코어는 달라붙어 있는 것을 하나하나 칼로 분리하여 뜯어냈습니다. 그래서큰 트랜스가 아닌데도 다 빼내는데 반나절은 걸렸습니다.



    기존의 1차 2차 배선은 120V, 240V로해서 단자에 연결해버렸고, 새로운 2차를 감았습니다. 1회 감고 전압을 측정하여 계산한 결과 14회를 감으면 비슷합니다. 코어는 다행히 남기지 않고 성공적으로 모두 끼워 넣었습니다. 조립 후 가볍게 로드를 걸고 측정하니 2.629V 입니다.



    샤시에 배치를 하고, 구멍 뚫고 트랜스를 달았습니다. 투톤 제네레이터 모듈을 소켓에 꽂을 때 히터 트랜스 때문에약간 비스듬히 넣어야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딱 맞습니다. 히터 트랜스 자리는 원래 HV용 오일 콘덴서가 있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노란 원통형 필름 콘덴서로 교체하고 (2년전에) 위치가 바뀌면서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B+는 원래 있던 6BW4 정류관은 사용을 하지 않고, 1N4007 네개로 브릿지 정류를 했습니다. 여기서 관찰한 것은, 2.5V 권선을 더한 이후로, 240V 권선에서 전압이 더 높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상했던 330VDC가 아니라, 355VDC (loaded)가 나와줍니다. 원래 회로의 360V에 더 가까우니 더 좋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배선은 원래 트랜스에서 잘라낸 선을 그대로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900V HV 부스터는 자그마한 보드입니다. 입력은 5-12VDC이고, 발진으로 120-170VAC가 생성됩니다. 그 다음 쇼트키 다이오드와 콘덴서로 구성된 3단의 배압 회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출력은 1,000V 이상도 나오게 됩니다. 전류는 최소 수 mA 정도 가능한데, DI-1의 CRT 회로에서는 600uA 정도를 사용하므로 용량은 충분합니다. 6.3V 히터 전원을 반파 정류하여 넣었더니 전압이 부족하여 배압 정류로 바꾸어 넣었습니다. 이 출력을 직접 CRT에 넣으니 약간의 노이즈가 보였는데, 기존의 HV 정류 회로를 통하도록 했더니 말끔해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실험 중인 장면입니다.



    최종 설치된 모습입니다. 히터 전압도 너무 높아 0.6옴 저항을 넣어 낮추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측정한 전압들입니다.
  • CRT 히터 2.485V AC
  • 히터 6.27V AC (저항이 없으면 7.15V)
  • B+ 355V DC
  • HV 898V DC (반고정으로 900V에 가깝게 조정)






  • 사실 2년전 10월에 투톤 오디오제네레이터가 상태가 안좋아서 점검하니, 6AN8 하나는 거의 죽었고 나머지 하나도 간당간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두 개를 새로 구했는데, 트랜스가 타버려 설치도 못하고 2년이 흐른겁니다. 이번에 드디어 설치했습니다.



    뒤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CRT 겉에는 특별히 결을 넣어 만든 뮤메탈 자제의 자기 실드가 있습니다. 소켓은 핀이 드러나 있어서 뚜껑 열고 작업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다음은 2년 전 원형과 이번 작업 후의 비교입니다.





    자 이제 동작을 시켜봐야죠. 5W 출력의 uBITX 트랜시버를 연결하여 SSB로 음성 송신하니, 엔벨로프가 나옵니다. 콘덴서 분압 회로를 통한 6단 입력 레벨 선택 스위치가 있어서 5W부터 1kW까지 문제없습니다.



    제대로 앰프에 연결하고, 내장된 투톤오디오 제네레이터를 가동시켜 송신해봅니다. 이쁘게 사다리꼴/삼각 패턴이 보입니다.





    TR5 송신에 머큐리 III 앰프를 연결하여 보는 동영상입니다. 음성 송신. 싱글톤 엔벨로프, 투톤 엔벨로프, 그리고 투톤 패턴입니다.

    1월 2일에 모든걸 마쳤습니다. 이렇게 보면 계획, 실행, 완성이 술술(SUL, SUL)된 것 같지만, 사실 수많은 시행 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충 넘어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해결해 내면 보람이 더욱 큽니다. 실수로 인한 쇼트로 HV가 안나오기도 했고, 다됐다고 캐비넷에 넣고 나사를 조이자, 제조 공정상 문제점으로 수평 스윕이 안나오기도 했습니다. 연결선이 짧아서 나사를 조이자 샤시가 약간 당겨져 냉땜이 되어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공들여 고친만큼 오래오래 잘 작동해주길 바랍니다.